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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

가랑비와 안개비

by 한글문화연대 2019. 5. 29.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8] 성기지 운영위원

 

무더위가 일찌감치 찾아오면서 본격적인 모내기철이 시작되었다. 이맘때쯤 농부들은 들판을 흠뻑 적셔주는 빗줄기를 고대하게 되는데, 아쉽게도 강수량은 턱없이 적다.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져서 타들어가는 농부의 입가에 웃음을 떠올리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를 ‘작달비’라고 한다. 작달비를 만나면 우산도 별 소용이 없게 되지만, 옷이야 흠뻑 젖건 말건 작달비가 그리운 요즘이다.


‘작달비’와 반대되는 비가 ‘안개비’, ‘는개’, ‘이슬비’, ‘가랑비’ 들이다. 가늘고 잘게 내리는 비인 ‘잔비’도 있고,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만큼만 오는 ‘먼지잼’이란 비도 있다. 이 가운데 ‘잔비’는 국어사전에 가랑비의 다른 말로 올려놓았다. 그런데 가랑비는 어원이 잘못 전해지고 있는 말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슬비는 “이슬처럼 내리는 비”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가랑비’의 어원은 쉽게 알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랑비’의 어원을 “가늘게 내리는 비”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올바른 어원이 아니다.


‘가랑비’는 ‘가라’와 ‘비’가 합쳐진 말이고, ‘가라’는 안개를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그러므로 ‘이슬비’가 “이슬처럼 내리는 비”라면, ‘가랑비’는 “안개처럼 내리는 비”를 가리켰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가랑비’는 “안개처럼 내리는 비”로 해석되지 않고, 그저 “가늘게 내리는 비” 정도로 쓰이게 되었다. 언제부턴지는 알 수 없지만 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요즘에는 “안개처럼 내리는 비”는 따로 ‘안개비’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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