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293] 성기지 운영위원
정부의 지원으로 <겨레말 큰사전> 편찬 사업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고, 남북한 언어 차이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 가볍지 않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말 가운데 우리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가 혼동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남북한 언어 차이가 생각보다 그리 심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신이 흐릿한 상태를 흔히 ‘흐리멍텅하다’고 말하지만, 표준말은 ‘흐리멍덩하다’이다. “하마트면 큰일 날 뻔했다.”처럼 ‘하마트면’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는데 ‘하마터면’이 표준말이다. 귀지를 파내는 기구를 ‘귀지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표준말은 ‘귀이개’이며, “담배 한 가치만 빌려 주세요.”라고 할 때의 ‘가치’도 표준말로는 ‘개비’라고 해야 한다. 또, 낳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젖먹이 아이를 부를 때 ‘애기’라고 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규범어에서는 ‘아기’가 표준말이다. ‘흐리멍텅하다’, ‘하마트면’, ‘귀지개’, ‘담배 한 가치’, ‘애기’ 들은 모두 북한말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남한말과 북한말이 아주 다른 경우도 많다. 북한에는 ‘꽝포쟁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허풍쟁이’와 가장 가까운 말이다. 북한에도 ‘허풍쟁이’란 말이 있지만 ‘꽝포쟁이’는 ‘허풍쟁이’보다 속된 말로 쓰인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보고 언짢고 가엾은 마음이 들 때 ‘안쓰럽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뜻으로 쓰는 북한말은 ‘안슬프다’이다. 북한사람들이 손아랫사람의 딱한 형편을 보고 “안슬퍼.”라고 하면 슬프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안쓰럽다는 뜻이 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