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296] 성기지 운영위원
요즘 일본과의 무역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나날살이에 아직 남아 있는 일본말 찌꺼기에 대한 경각심도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청산되지 않고 있는 일본말 찌꺼기는 대체로 그 모습이 얼른 드러나지 않는 ‘일본식 한자말’들이다. 전통적인 한자말 ‘이해’(理解)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식 한자말 ‘납득’(納得; なっとく)으로 대체되었다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지금은 가계에서 수표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오만 원짜리 지폐가 발행되기 전에는 개인도 수표를 자주 사용하였다. 물건 값을 치르기 위해 수표를 낼 때, 흔히 “수표 뒷면에 이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수표 뒷면에 보면, 이름과 전화번호나 주민등록번호와 같이 신원을 기록할 수 있는 칸이 인쇄되어 있는데, 여기에 수표 사용자의 인적사항을 적어 넣는 것을 ‘이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의 ‘이서’라는 말은 우리식 표현이 아니다.
이 말은 일본말 ‘裏書き’(うらがき[우라가끼])가 우리말에 그대로 들어와서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이서’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뒷보증’이라 하고, 우리식 한자말로는 ‘배서’(背書)라고 한다. 그러므로 “수표 뒷면에 이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은 “수표 뒷면에 배서해 주십시오.” 또는 “수표 뒷면에 뒷보증해 주십시오.”라고 고쳐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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