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 전철역을 소개합니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6기 이윤재 기자
ture0618@naver.com
현대인에게 있어서 전철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전국 90분 생활화’를 목표로, 정부 정책에 따라 꾸준히 전철역이 늘어났고, 2017년 기준 서울, 경기, 인천의 수도권에만 681개의 전철역이 있으며, 대전, 광주, 대구, 부산의 광역시를 포함하면 957개에 이른다. 1000개에 이르는 전철역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아름다운 이름이 있다. 바로 순우리말 전철역이다. 매일 접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지만, 눈여겨보지 않았을 수도권 전철역 가운데 순우리말 역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2호선 뚝섬역]
독기(纛旗)의 모습 출처-위키백과
안타깝게도 1호선은 서울역을 제외하고는 순우리말 역이 없어서 2호선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건설 당시에는 ‘경마장역’으로 불렸는데, 이는 과거 서울숲 자리에 경마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불리는 ‘뚝섬’의 이름은 ‘독기(纛旗)’에서 유래했다. 독기란 왕이 타고 가던 가마 앞에 세우던 큰 의장기로 뚝섬역 주변이 조선 시대 왕의 사냥터로 자주 애용되었기 때문에 군대가 출병할 때와 제사를 지낼 때 벌판에 이 기를 꽂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실제 섬이 아님에도 ‘섬’이 된 것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모습 때문이라고 한다. ‘뚝섬역’은 ‘서울역’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지어진 순우리말 역명이니 더욱 특별하다.
[3호선 학여울역]
‘대동여지도’에 명시된 학탄(鶴灘)
‘학여울역’의 유래는 과거 사료에서 출발한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이 역은, 대동여지도에 학탄(鶴灘)이라 기재되어 있다. ‘탄’(灘)은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인 ‘여울’이라는 뜻이라 순우리말로 학여울이 되었고 이것을 그대로 역명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때 발음에 있어서 ‘학’과 ‘여울’의 합성어이기 때문에 'ㄴ'첨가의 영향으로 [하겨울력]이 아닌 [항녀울력]으로 발음해야 옳다.
이는 색연필의 표준발음이 [새견필]이 아닌 [생년필]인 것과 동일한 원리다.
[3호선 연신내역]
‘연신내’는 연서천(延曙川)의 순우리말이다. 당시 역촌동에는 마을 동쪽에 산이 있었다고 한다. 해는 동쪽에서 떠오르는데, 마침 산이 동쪽에 솟아있으니 해가 산을 넘을 만큼 새벽이 늦어졌을 것이다. 이를 한자로 표현하면 새벽(曙)이 늦다(延)가 되고, 이를 우리말로 다시 옮기면 지금의 3호선 ‘연신내’가 되는 것이다. 참 낭만적인 이름이다.
[4호선 선바위역]
4호선의 ‘선바위역’은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과천선의 전철역이다. 인근에 양재천이 있는데, 하천에 큰 바위가 우람하게 서 있다는 ‘선암’이라는 지명을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로 썼다고 한다. 얼마나 큰 바위였을까? 새삼 그 크기가 궁금해진다.
[5호선 애오개역]
‘애오개역’의 유래는 다양한데, 여기서 소개하는 두 가지 설이 유력하다. 충정로에서 마포로 가려면 아현동을 지나는 작은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그 고개가 마치 아이처럼 작다는 뜻으로 ‘아이고개’, ‘애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하나다. 또 하나는, 옛날 한성부에서 서소문을 통해 시체를 내보냈는데 아이 시체는 이 고개를 넘어 묻게 했다는 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 ‘애오개’ 인근에는 곳곳에 아이 무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5호선 굽은다리역]
강동구 천호동의 옛날 지명인 곡교리(曲橋里)를 토박이말로 풀이한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이 일대가 개발되기 전 ‘당말마을’과 ‘벽동마을’을 연결하는 다리가 굽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밝힌 것을 보아 그 당시 굽은 다리는 상당히 신기한 존재였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6호선 독바위역]
‘독바위역’ 역시 유래가 다양하다. ‘독바위골’의 바위가 독(항아리)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는 설도 있고 유달리 독바위역이 있는 지역(독박골)에 바위가 많아 숨기가 편하다 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인조반정 당시 일등공신이었던 원두표 장군이 거사 직전까지 숨어 지내던 독바위굴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6호선 버티고개역]
‘버티고개역’은 조선 시대 치안을 담당하던 군인들이 ‘한남동’에서 ‘약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도둑을 쫓으며 '번도(도둑)!'라고 외치던 것이 번티로 그리고 버티로 바뀌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치안이 안 좋았던 곳일까? 지금의 ‘한남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유래다.
[7호선 마들역]
역참기지가 있던 상계동에서 들에 말을 놓아 키웠다고 해서 마들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말의 들’이 ‘마들’로 변한 것이다. 또 하나의 설로는 예전에 이 일대에 삼밭이 많아 순우리말 ‘마뜰’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둘 다 ‘들’이 들어가는 점에서 넓은 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7호선 까치울역]
이름이 특이해 많이 알려진 ‘까치울역’도 그 유래가 두 가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까치가 많아 '작동(鵲洞)'이라 불렀다는 설과, 마을이 작아 '작다'라는 뜻의 우리말 '아치'가 까치로 변했다는 설이다.
[7호선 장승배기역]
‘장승배기’는 "장승이 세워진 곳"을 뜻하는 용어이다. 조선의 제22대 국왕인 정조는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아버지인 장조의 묘소인 ‘융건릉’을 참배했다. 참배를 위해 정조는 언제나 숲이 우거진 이곳을 행차했고, 수행원들에게 숲에 장승을 세우라 명령했다.
[7호선 보라매역]
‘보라매역’의 ‘보라매’는 태어난 지 1년이 안 된 매를 가리킨다. 과거 보라매역 주변에 공군사관학교가 있을 때 붙여진 이름으로 공군사관학교의 상징물인 ‘보라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지방으로 이전한 상태지만 여전히 ‘보라매역’으로 불리고 있다. 근처에 ‘보라매 공원’ 역시 같은 역사가 있다.
[9호선 노들역]
8호선 역시 순우리말의 역명이 없다.
9호선에는 노들역이 있다. 수험생들에게 익숙한 ‘노량진’을 순우리말로 하면 ‘노들나루’인데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노량진은 왜 노들이라 불리게 되었을까? 옛 노량진은 수양버들이 울창하고 백로가 노닐던 명소였다고 한다. 따라서 노량진을 ‘노들’이라 부르곤 했다는데, 과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지금까지 수도권전철을 중심으로 순우리말 전철역의 이름과 역사를 알아보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쳐갔을 이름이지만, 각각 뜻과 재미있는 유래로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부르는 그 이름들이 어디서 왔는지, 왜 그렇게 부르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유익하다.
서울 지하철 노선도
<출처-한국철도공사 누리집 http://www.letskor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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