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사랑한 조선의 외국인, 호머 헐버트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6기 고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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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어 하나 정도는 기본적으로 배우는 시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어릴 때부터 배운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도 영어는 취직 준비나 직장 생활 등의 과정에서 상당히 큰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외국에서는 한국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어를 향한 관심이 올라갔고, 우리나라 대학에 유학을 오거나 각국의 한국어 학원을 다니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이나 ‘대한 외국인’만 봐도, 한국어를 한국인만큼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최근에 많아지기는 했지만, 아주 옛날이라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려 조선 시대에도 한글을 배우며 여러 성과를 낸 외국인이 있었다. 바로 ‘호머 헐버트’라는 인물이다.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는 미국 출신으로, 1886년 조선 땅을 처음 밟았다. 그 당시 헐버트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인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온 교육자이자, 선교사였다. 조선인에게 영어를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헐버트는 한국어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호머 헐버트의 사진.

  

 그렇게 헐버트는 단기간 내에 한글을 익혔고 1889년에 세계지리서인 ‘사민필지(士民必知)’를 펴냈다. 이 책에는 한자가 하나도 없으며, 오직 한글만이 쓰여 있다. ‘사민필지’는 ‘선비와 백성이 모두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이며, 책에는 세계의 지리와 문화가 소개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은 1890년대 국어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사이시옷과 된시옷 등을 사용했고, 유럽 국가들의 이름이 지금과는 다르게 표기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헐버트는 ‘사민필지’를 통해 한자보다 훨씬 우수한 한글이 백성들에게 대접받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헐버트는 계속해서 한글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외국에 소개되는 ‘한글소식’이라는 잡지에 최초로 한글에 관한 논문을 썼다. 한글의 과학적인 체계에서 나오는 여러 장점들이 외국인인 헐버트마저도 사로잡았던 것이다.        

▲사민필지.


 1893년, 그는 배재학당의 출판기관인 ‘삼문출판사’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주시경을 만나게 된다. 우리에게 지금은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로 유명한 주시경이 헐버트와도 친분을 쌓았던 것이다. 그렇게 헐버트는 1896년에 주시경, 서재필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여기서 놀라운 건, 지금은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띄어쓰기가 바로 ‘독립신문’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독립신문’에는 “구절을 띄어 쓰는 것은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라는 말이 있다. 훈민정음이나 홍길동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띄어쓰기를 쓰면서 한글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외에도 점 찍기가 처음 도입되었다. 


 하지만 헐버트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로도 활약한 그를 일제가 추방했기 때문이다. 이후 1949년에 그는 노인이 되어서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의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그리고 입국 후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헐버트의 유언에 따라, 현재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그의 묘비가 있다. 먼 옛날에도 이렇게까지 한글의 위대함을 깨닫고 한글을 사랑하며, 세계에 알리려 노력한 외국인이 있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비록 헐버트가 대양을 건너온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눈 감는 날까지 한국과 한글을 생각한 그의 마음은 한국인만큼 진실했을 것이다. 외국인도 사랑하는 한글의 우수성을 우리도 돌이켜보고 늘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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