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가깝고도 먼 그대, 순화어 - 김성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0. 6. 11.

가깝고도 먼 그대, 순화어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7기 김성아

ryuk67@naver.com


 “흑화한 손나은 같다” “멤버들 전부 흑화한 이번 컨셉 완전 취향 저격” ‘흑화하다’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진 않았지만 근래에 누리꾼들 사이에서 선풍적으로 유행하는 단어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어둠의 힘으로 사악해지다는 의미로, 아이돌들이 기존의 미소년, 미소녀 이미지에서 벗어나 원숙함, 퇴폐미를 다룬 콘셉트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이러한 콘셉트가 일반화되자 이제 ‘흑화한’ 아이돌을 대놓고 요구하는 애호가들도 생겼다. 색다른 가수의 모습은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인 듯하다.

 그러나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시계는 아이돌 애호가들의 것과 정반대로 흘러간다. 그들의 주된 활동은 이미 ‘흑화’된 단어를 ‘순화’하는 것이다. 순화어는 불순한 요소를 없애고 깨끗하고 바르게 다듬은 말, 즉 지나치게 어려운 말이나 비규범적인 말, 남용되는 외국어 따위를 알기 쉽고 규범적인 상태로 또는 우리말로 순화한 것을 이른다.


순화 작업의 주체와 절차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국립국어원은 ‘모두가 함께하는 말다듬기 누리집(http://www.malteo.net/)’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해 순화어 후보를 정하고, 1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말다듬기 위원회’를 통해 최종 순화어를 결정한다. 그렇게 결정된 순화어는 ‘이렇게 바꿨어요!’ 게시판에 등록되어 국민들에게 고시된다.

 2011년 11월까지만 해도 우리말 순화 운동은 오롯이 누리꾼의 몫이었다. 순화어를 제안하는 것도, 최종 순화어를 뽑는 것도 모두 인터넷상에서의 댓글과 투표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2011년 12월부터는 최종 순화어의 결정권이 말다듬기 위원회로 넘어갔다. 본래의 말이 지닌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하거나 조어가 부적절하여 다수 국민의 언어 의식과 거리가 있는 말이 누리꾼들에 의해 순화어로 뽑히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말다듬기 위원회 외에도 2019년 9월에 발족된 새말위원회는 외국어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1> ▲ ‘이렇게 바꿨어요!’에 게시된 순화어 모둠 접시


순화 대상어

 일상에서 쓰이는 영어, 한자어 등의 외래어와 일본식 행정용어는 모두 순화 대상어가 된다. 국립국어원에서 관리하는 ‘다듬고 싶은 말’ 게시판에는 4/23부터 5/23 한 달간 ‘검색 엔진’, ‘보조 배터리’, ‘뉴미디어’, ‘뉴노멀 시대’를 포함하여 110개의 단어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 중에는 누리꾼들이 취지를 잘못 파악하여 올린 꿀잠(꿀처럼 맛있는 잠), JMT(존맛탱), 빼박캔트(빼도 박도 못 한다), 더럽(the love) 등의 줄임말과 속어도 있었다.


다양한 유형의 순화어(1) - 토박이말만 활용한 순화어

 순화어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말 운동의 방향성과 가장 잘 맞는 것은 ‘토박이말만 활용한 순화어’이다. 댓글(리플), 둔치(고수부지), 덮밥(돈부리), 누리꾼(네티즌) 등은 토박이말로서 기존의 단어를 완전히 대체하며 훌륭한 우리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토박이말이 순화의 재료로서 긍정적인 평가만을 받아온 것은 아니다. 1) 쇳줄, 2) 배움터, 3) 보람판, 4) 머리인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들은 각각 1) 광맥, 2) 학교, 3) 간판, 4) 고데기를 다듬은 말이지만 지나치게 낯선 느낌을 주어 언어적 생명력을 얻지 못했다.


다양한 유형의 순화어(2) - 한자어와 외래어를 활용한 순화어

 외래어가 순화에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전속매장(브랜드 숍), 옥상정원(그린 루프), 인기명소(핫 플레이스), 칠판펜(보드마커)은 모두 순화한 말인데도 한자어 또는 영어를 사용했다. 우리말이 아니더라도 ‘널리 알려지거나’, ‘완전히 우리말로 정착했다고’ 생각되는 단어일 경우 순화어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 순화 운동의 본질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누구나 알기 쉽게 바꾸는 데 있다. 이질적인 순화어는 또 다른 외국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기준을 바탕으로 순화어를 만들어야 할까? 이미 흑화된 국민들의 언어생활 앞에 무작정 토박이말을 들이밀 수도, 그렇다고 우리말이라고 하기엔 어설픈 단어를 순화어로 제시할 수도 없지 않은가. 국민이 할 수 있는 건 적극적인 제안과 반응이다. 순화어를 사용해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인 만큼, 누리꾼들의 반응은 살아있는 순화 연구의 자료이자 큰 힘이 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순화해야 할 말을 발견한다면 ‘다듬고 싶은 말’ 게시판에, 제안하고 싶은 순화어가 떠오른다면 ‘어떻게 바꿀까요?’ 게시판에 올려보자. 2020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 한글문화연대가 함께 공공언어에서 쓰는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마련한 누리집에서도 순화할 말을 신청하는 게시판( https://www.plainkorean.kr/client/apply )이 있다고 한다. 국민의 관심과 전문가의 도움이 계속된다면 순화어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고 더 쉽게 소통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자료>

에듀윌 KBS 한국어 능력시험 2주 끝장(저자 신은재, 김지학)

시사상식사전(저자 pmg 지식엔진연구소)

우리말 다듬기 누리집 ( http://www.malteo.net/ )

[출처: 한국경제]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외래어 대 다듬은말’, 언중의 선택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