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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이순신 장군은 운이 좋은 분이다.

by 한글문화연대 2014. 8. 14.

[우리 나라 좋은 나라-45] 김영명 공동대표

 

요즘 ‘명량’이라는 영화가 대인기다. ‘아바타’의 1,300만 관객 기록을 곧 갈아치울 기세다. 우리 집에서도 아내와 아이들 둘이 다 같이 보러 갔는데 나는 안 갔다. 그 전날 아내와 둘이 다른 영화를 보아서 이틀 연속 영화를 보는 내 인생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그 때문이 아니고 그냥 귀찮아서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뒹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좋으니 아니니 하면서 하릴없는 논쟁도 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걸 떠나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참 이순신 장군님은 운이 좋은 분이시다.” 아니 세 번이나 파직 당하시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왜적과 싸우고 아들이 전사하고 전쟁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드디어 본인이 유탄에 맞아 돌아가시는데, 운이 좋다는 게 무슨 말인가?


이런 말이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존경 받는 분이다. 그 이유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왜적을 쳐부수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하시고 나라를 구했을 뿐 아니라 그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후세에 길이길이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이 아무리 그렇게 훌륭한 분이라고 하더라도 왜적이 조선에 쳐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런 훌륭함이 발휘될 수 있었겠는가? 그저 훌륭한 한 장수로서 삶을 마쳤을 것이고 후세에 가장 존경 받는 분이 되기는커녕 역사에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은,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이 땅에 쳐들어와주어서 이순신이라는 위인이 있게 해 준 왜적에게 감사해야 할 것인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순신의 위대함을 발휘하게 만들어준 것이 왜적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 일이란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잘남에 의해 일어날 수는 없고 그 잘남이 발휘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링컨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된 것은 노예제라는 비참한 상황과 노예 해방을 반대한 남부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북부와 남부가 전쟁을 하였고, 거기서 북부가 이겼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링컨이 보여준 지도력과 도덕적 우월성은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지만, 그런 상황이 없었더라면 그런 지도력과 도덕적 우월성이 발휘될 수 없었을 것이다.


‘명량’을 보고 이순신의 위대함에 옷깃을 여미지는 못할망정, ‘명량’을 보지도 않고 ‘명량’을 본 아무도 떠올리지 않을 이런 말을 늘어놓는 나도 참 특이한 인간이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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