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0] 김영명 공동대표
그림을 시작하고 보니(2)
이제 정말 구청 문화센터로 가야 하나? 망설이다가 가 보았다.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가보았다. 몇몇 선생님들에게 그림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개중에는 나와 맞는 분도 있고 안 맞는 분도 있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미술 분야도 선생은 학생과 맞아야 하는 것 같다. 선생님들 중에 나더러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었다. 나는 내가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몰랐다. 아니 소질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더 옳겠다. 내가 미술에 특별한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학교 다닐 때 미술 성적이 특별히 좋지 않았고 미술반에 들어갈 정도로 재능이나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런 것들이 꼭 소질 있고 없음의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어릴 적의 성취는 얼마나 그 분야에 노출이 많이 되는 환경에서 자랐느냐가 더 좌우하는 것 같다.
내가 미술가가 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또 다른 까닭은 어릴 적부터 보고 들은 화가들의 그 특별한 모습들 때문이었다. 자기 귀를 자르거나 자기가 그린 그림을 불살라버리거나 술 먹고 주정뱅이 일생을 살거나 영양실조로 굶어죽거나 미쳐서 돌아다니거나 하는 것이 화가인 줄 알았다. 어째 그런 얘기들만 잔뜩 소개하는지... 아니면 적어도 이상한 옷 입고 머리 기르고 수염 기르고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내 속에 꿈틀거리는 뭔가가 있고 나는 절대로 공무원이나 회사원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화가나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나보다 한 열 배는 더 그런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런 게 아니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선생이든 수강생이든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심심할 지경이다. 이상한 옷도 안 입고 다니고 술 마시고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가 뒤풀이를 주동해야 할 지경이다. 한 선생님은 이상한 옷을 입고 머리를 기르기는 하였는데 술은 입에도 안 댄다. 미술로는 나와 제일 잘 맞는 선생님이지만 그 점은 심심하다.
어릴 때 내가 많이 들었던 그 예술가들의 온갖 기행들은 주변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예술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지극히 건전하고 상식적인 예술가들도 많이 있다. 마티스도 그런 사람이었고 피카소도 여성 편력만 빼면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예술가들은 일반인들보다는 좀 더 이상한 사람들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사 여러 다양한 모습들의 균형을 못 맞추고 한곳으로만 빠져드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이 예술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그런 점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기도 한다. 교수들도 좀 그런데, 그래서 교수들 중 대다수는 ‘교수밖에 못할 놈들’이다. 예술가들도 예술밖에 못할 놈들인 사실에서는 교수들보다 더 하다.
나는 아무리 예술이 뛰어나도 인간이 안 되면 존경하지 않는다. 술을 너무 마셔대던 잭슨 폴록은 만취한 상태에서 애인, 그리고 애인 친구와 함께 자동차로 도로를 질주하다가 전봇대를 들이박고 죽었다. 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자들은 아랑곳없이. 애인만 혼자 살아남았다. 앤디 워홀은 작업공장을 차려놓고 무분별한 양성 성 행위를 일삼으며 그를 사랑한 젊고 아름다운 재벌 2세 여성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 여자는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안 좋아한다. 그들의 예술이라는 것도 실상 유럽 미술계에 대한 열등감을 이기기 위해 미국 미술계에서 상품화시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들이다.
상품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한 점이 작년인가에 우리 돈 2000억 원 이상에 팔렸단다. 참, 이게 이해가 가는가? 그 돈이면 세상의 굶어죽는 어린이들 모두를 살리고도 남겠다(다시 생각하니 모두는 아닐 것 같다). 완전히 투기 시장이 되어 돈이 돈을 먹는 것이 미술계의 실상이다. 한쪽에서는 생활도 어려운 무명작가들이 수두룩하고. 그림의 예술적 가치와 돈의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사 무엇이 그렇지 않겠냐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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