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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지169

비설거지와 표심설거지 [아, 그 말이 그렇구나-42] 성기지 운영위원 6월 4일은 지방선거를 치르는 날이다. 6월 들어 전국 곳곳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이 날에도 드문드문 투표소로 가는 길을 적실 듯하다.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도려냈던 진도 앞바다의 참담한 사고가 아직 수습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권력자들을 뽑아 주어야 하는 발걸음이다. 가느다란 빗줄기에도 자꾸 걸려서 발을 내딛기가 힘겹다. 비와 관련된 우리말 가운데 ‘비설거지’가 있다. 이 말은 “비가 오려고 할 때,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 뜻한다. “비 올 것 같다. 빨래 걷어라.” 하는 것보다 “비 올 것 같다. 비설거지해라.”고 하면, 빨래뿐 아니라 비 맞으면 안 되는 다른 물건들도 치우라는 말이 된다. 지방선거를 통해 권력을 꿈꾸는.. 2014. 6. 3.
안갚음하러 귀향합니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41] 성기지 운영위원 “안갚음하러 귀향합니다.” 언뜻 들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빚을 갚지 않기 위해 귀향한다는 걸까? (그렇다면 문장이 잘못 되었다.) 고향의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귀향한다는 걸까? (이때에는 낱말의 철자가 틀렸다.) ‘앙갚음’이란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남이 자기에게 끼친 만큼 자기도 그에게 해를 입힌다.”는 뜻의 말이다. 한자말로 하면 ‘복수’이다. 가령 “그가 나를 불행에 빠뜨렸으니, 나도 앙갚음을 할 거야.”처럼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에 앙갚음과 발음이 무척 비슷한 ‘안갚음’이라는 낱말이 있다. 빚을 갚지 않는다는 ‘안 갚음’이 아니라,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다는 참한 뜻을 가진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곧 “안갚음하러 귀향합니다.”는.. 2014. 5. 28.
다이어트 [아, 그 말이 그렇구나-40] 성기지 운영위원 오월의 신록이 아직 한창인데 한낮에는 벌써 초여름 무더위의 향기가 난다. 이 싱그러운 계절을 좀 더 누리고 난 뒤에 더위를 만났으면 싶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노출의 계절을 맞이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더 군살을 빼고 싶다. 우리는 살을 빼는 모든 행위를 ‘다이어트’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이어트(diet)는 ‘살찌지 않는 음식’이나 또는 ‘식이요법’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영어이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살 빼는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가령 “다이어트하기 위해 수영장에 다닌다.”라든지, “에어로빅은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은 잘못이다. 음식을 조절하여 살을 빼려는 이들은 “다이어트로 살을 빼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운동으로 .. 2014. 5. 20.
멋쟁이를 만드는 멋장이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 성기지 운영위원 요즘엔 화장품 가게들에 밀려나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옛날에는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화장품을 파는 여인네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화장품만 파는 게 아니라, 집밖으로 나가기 힘든 마을 아낙들의 얼굴을 가꾸어 주는 ‘출장 분장사’ 노릇까지 떠맡았었다. 바로 이들을 대신하여 생겨난 직업이 오늘날의 이다. 얼굴 못지않게 여자의 겉모습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머리 모양새이다. 마을 아낙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온갖 수다까지도 다 받아 주던 직업이 미용사였다. 그런데, 미용실이 차츰 내부 장식이 화려해지며 ‘헤어 살롱’으로 바뀌더니, 미용사는 이제 로 불린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옷은 입기에 따라 사람의 겉모습을 초라하게도, 근사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옷맵시를 .. 2014. 4. 9.
봄새 별고 없으신지요? [아, 그 말이 그렇구나-30] 성기지 운영위원 사자성어 가운데 ‘삼춘가절’이라는 말이 있다. 봄철 석 달의 좋은 시절을 뜻하는 말로서 3, 4, 5월을 삼춘가절이라고 한다. 3월 하고도 중순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찬 기운이 남아 있어서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길나무 가지마다에 푸릇푸릇 돋은 싹들을 보니, 곧 봄을 만끽할 수 있는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봄이 되면서 직장인들은 몸이 자주 나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봄철에 느끼는 나른한 기운을 ‘봄고단’이라고 한다. 흔히 한자말로 ‘춘곤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예부터 우리 한아비들은 “요즘 봄고단을 느끼는지 낮에도 자꾸 졸음이 옵니다.”처럼 말하고 썼다. 봄고단을 이겨내려면 일을 할 때 몸을 되도록 많이 움직이.. 2014. 3. 12.
발자국 소리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 성기지 운영위원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럽거나 도로 한쪽에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잘 달리지 못할 때가 있다. 아침 출근길에 이런 일이 생기면 지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엔 너나없이 “차가 막혀서 지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차가 막히다’라는 말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막히다’는 말은 ‘길이 막히다’라는 경우에나 쓸 수 있는 것이지, 차가 막힐 수는 없다. 이때에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거나 차들이 너무 많아서 ‘밀리는’ 것이다. 이렇게 자꾸 차들이 밀리게 되면 나중에는 ‘길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가 막히다’라는 말은 ‘차들이 밀리다’로 고쳐 쓰거나, 아니면 ‘길이 막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이처럼 뜻을 잘못 전달하고 있는 말들은 주변에서 생각보다 .. 2014. 2. 5.
설 잘 쇠세요! [아, 그 말이 그렇구나-27] 성기지 운영위원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설 잘 보내세요!” 풍성한 명절을 앞두고 저마다 정겨운 인사말들을 나눈다. 그러나 설을 잘 보내라는 이 인사말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명절에는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기도 하고 헤어져 살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모처럼 정을 나누기도 한다. 만약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명절을 지냈다면 ‘명절을 보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차례도 지내고 친척들과 만나 음식도 함께 먹고 했다면 명절을 그냥 보내버린 것이 아니라, ‘쇤’ 것이 된다. 그래서 ‘명절을 쇠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설 잘 보내세요!”보다는 “설 잘 쇠세요!”가 바람직한 인사말이다.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만났을 때 “설 잘 쇠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괜찮지만, “설 잘 .. 2014. 1. 29.
떨거지와 떼거지 [아, 그 말이 그렇구나-26] 성기지 운영위원 설 연휴가 눈앞에 다가왔다. 자손이 많은 집에는 명절마다 온 나라 곳곳에서 아들딸과 손주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주름 깊게 팬 할머니는 싫지 않게 웃으며 “어이구, 이게 웬 떨거지들이냐!” 하신다. 일가친척 붙이를 ‘떨거지’라고 한다. “그 집도 떨거지가 많다.”처럼 쓴다. 또, 일가친척 붙이는 아니지만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한데 아우를 때도 떨거지라고 하였다. 본디는 낮은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한통속으로 지내는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변하여 쓰이고 있다. ‘떨거지’와 형태가 비슷한 ‘떼거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떼를 지어 다니는 거지’가 줄어들어 만들어진 말이다. 흔히 ‘졸지에 거지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을 비유하는 낱말로.. 2014. 1. 23.
건달, 놈팡이, 깡패는 다국적 언어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 성기지 운영위원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건달’이나 ‘놈팡이’, ‘깡패’ 같은 말들은 모두 외국말의 영향으로 생겨난 말들이지 본래의 우리말이 아니다. ‘건달’이란 말은 불교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는 여덟 신장 가운데 하나인 ‘건달바(Gandharv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달바’는 우리말이나 한자말이 아니라 고대 인도어라고 할 수 있다. 건달바는 음악을 맡아보는 신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만 즐기기 때문에,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건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건달 앞에 다시 빈손이라는 뜻을 가진 백수를 붙여서 ‘백수건달’이라 하면,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 2014.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