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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잘 쇠세요! [아, 그 말이 그렇구나-27] 성기지 운영위원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설 잘 보내세요!” 풍성한 명절을 앞두고 저마다 정겨운 인사말들을 나눈다. 그러나 설을 잘 보내라는 이 인사말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명절에는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기도 하고 헤어져 살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모처럼 정을 나누기도 한다. 만약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명절을 지냈다면 ‘명절을 보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차례도 지내고 친척들과 만나 음식도 함께 먹고 했다면 명절을 그냥 보내버린 것이 아니라, ‘쇤’ 것이 된다. 그래서 ‘명절을 쇠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설 잘 보내세요!”보다는 “설 잘 쇠세요!”가 바람직한 인사말이다.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만났을 때 “설 잘 쇠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괜찮지만, “설 잘 .. 2014. 1. 29.
매춘과 정자 제공 [우리 나라 좋은 나라-20] 김영명 공동대표 두어 해 전인가 신문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어떤 남자가 여자와 헤어지면서 여자의 요구로 자신의 정자를 제공하고, 앞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법원은 그리하여 태어난 아기를 남자의 친자로 인정하고 양육비 제공을 의무 지웠다고 한다. ‘웃기는 남녀로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자든 난자든 남에게 제공하여 생명을 탄생케 하는 것을 법으로 허용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나? 특히 정자 은행을 통한 무작위의 제공 말이다. 그러면 정자를 준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자기 자식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꼴에 처하게 되는데, 그래도 되는 것일까? 특히 정자 제공이나 난자 제공에는 돈이 따르게 될텐데, 이는 .. 2014. 1. 29.
흥부와 놀부 [우리 나라 좋은 나라-19] 김영명 공동대표 한국 사람으로서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모가 아무리 한국인과 비슷하고 제 아무리 한국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도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모르면 금방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탄로 날 것이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는 착한 흥부와 악한 놀부를 대비하여 “착하게 살자”고 강조하는 권선징악의 교훈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표준적인 해석에 반발하여 오히려 놀부를 추켜세우고 흥부를 깎아내리는 경향도 있다. 흥부는 무능하기만 하니 오히려 생활력이 강한 놀부를 본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놀부 보쌈’ 등등이 그렇게 승승장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말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우리의 전래 동화들은 착함과 선함을 강조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효를 중시한다. .. 2014. 1. 23.
떨거지와 떼거지 [아, 그 말이 그렇구나-26] 성기지 운영위원 설 연휴가 눈앞에 다가왔다. 자손이 많은 집에는 명절마다 온 나라 곳곳에서 아들딸과 손주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주름 깊게 팬 할머니는 싫지 않게 웃으며 “어이구, 이게 웬 떨거지들이냐!” 하신다. 일가친척 붙이를 ‘떨거지’라고 한다. “그 집도 떨거지가 많다.”처럼 쓴다. 또, 일가친척 붙이는 아니지만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한데 아우를 때도 떨거지라고 하였다. 본디는 낮은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한통속으로 지내는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변하여 쓰이고 있다. ‘떨거지’와 형태가 비슷한 ‘떼거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떼를 지어 다니는 거지’가 줄어들어 만들어진 말이다. 흔히 ‘졸지에 거지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을 비유하는 낱말로.. 2014. 1. 23.
커피 나오셨습니다 * 이 글은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쓴 글로 경향신문(2014년 1월 17일)에 실렸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172029575&code=990100) 한 달 전에 인터넷 유튜브라는 곳에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제목에다 ‘사물 존대의 논리’라는 부제를 붙였다. 사람들 반응이 제법 괜찮아 1만명이나 보았고 이른바 ‘화제의 동영상’으로 텔레비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묘미는 급반전이었을 것이다. “신상품이십니다” “5만원이십니다” 등 손님을 극진히 모시겠노라고 쓰는 존댓말이 의도와는 달리 물건이나 돈을 높이고 있는데, 동영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어떤 슬픈 사정을 담고 있는지 비틀어서 보여줬다.. 2014. 1. 21.
봄날은 간다 [우리 나라 좋은 나라-18] 김영명 공동대표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거실을 몇 바퀴씩 돌 때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주로 흘러간 옛 노래가 많지만 때로는 곡에도 없는 가락을 내 맘대로 흥얼거리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돌면서 “엄마 노래 하나 해 줄까요?” 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조그맣게 노래 하나를 읊조렸다. 크게 하면 ‘웬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할까봐 남들이 안 듣게 조그맣게 한다. 다 하고 “나 노래 잘 하지?” 했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럴 줄 알았다. 예전에 내가 학생일 때 어머니가 방 청소를 하면서 흥얼거리던 노래가 생각난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였다. 어머니는 노래를 잘 하는 편도 아니고 자주 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때 내가 국민학생이었는지 중.. 2014. 1. 16.
건달, 놈팡이, 깡패는 다국적 언어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 성기지 운영위원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건달’이나 ‘놈팡이’, ‘깡패’ 같은 말들은 모두 외국말의 영향으로 생겨난 말들이지 본래의 우리말이 아니다. ‘건달’이란 말은 불교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는 여덟 신장 가운데 하나인 ‘건달바(Gandharv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달바’는 우리말이나 한자말이 아니라 고대 인도어라고 할 수 있다. 건달바는 음악을 맡아보는 신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만 즐기기 때문에,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건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건달 앞에 다시 빈손이라는 뜻을 가진 백수를 붙여서 ‘백수건달’이라 하면,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 2014. 1. 16.
[영상]10월 알음알음 강좌-안재홍, 한 민족지성을 위한 변명(안재홍의 한글사용과 민족주의) ■ 주제: 안재홍, 한 민족지성을 위한 변명(안재홍의 한글사용과 민족주의) ■ 강사: 윤대식(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때: 2013년 10월 24일(목) 저녁 7시 30분 ■ 곳: 공간 활짝(서울 마포) ■ 일제 강점기 비타협 민족주의자 안재홍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비판적 지성으로의 역할, 건국을 위해 분투했던 고단한 삶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2013. 12. 17.
그날엔 꽃이라(세종대왕을 기리는 노래) ■ 한글문화연대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애민 정신을 기리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23년만에 공휴일로 돌아온 567돌 한글날을 앞두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과 민본사상을 기리는 노래가 나왔다. 테너 임정현이 부른 “그날엔 꽃이라”(이현관 작곡, 이건범 작사)는 종래의 틀에 박힌 기념 노래와 달리 매우 서정적이고 적절한 현란함마저 갖추고 있다. 굳이 분야를 정하자면 세미 클래식 류에 속하는 이 노래는 테너 임정현의 맑은 목소리와 넓은 음역을 매끄럽게 소화하는 목청 덕에 감상의 묘미를 한껏 즐기게 해준다. 노랫말 역시 ‘세종’이나 ‘한글’과 같이 기념곡 냄새가 나는 낱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나무를 구성하고 있는 잎과 가지와 뿌리 및 꽃 등의 순환과 소통, 그리고 이를 둘러싼 자연과 하나로 어우.. 2013.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