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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말 비빔밥(이건범)57

<사랑스러운 아이들> 한글문화연대에서 하는 일 가운데 보람 없는 일이 있을까마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그런 일이 청소년 동아리 품어 키우는 활동이다. 벌써 5년째 하고 있는 '우리말 사랑 동아리' 키우는 일은 다른 어떤 곳의 지원도 없이 전적으로 우리 회원들의 회비로 예산을 붓고 있어서 더더욱 기쁨이 진하다. 해마다 20개 안팎의 청소년 동아리를 뽑아 최소한의 공부를 함께 하고, 활동 방법을 인터넷 카페에서 알려주고 끌어주면서 약간의 활동재료비를 지원해준다. 한글날에는 여러 동아리가 함께 모여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하고, 우리 한글문화연대에서 만든 유익한 유인물과 홍보책자도 제공해주어 활동을 돕는다. 대개는 학교 단위의 동아리라는 점이 여러 대학의 연합 동아리인 ‘우리말 가꿈이’와 다르다. 각자 학교는 다르지.. 2018. 11. 21.
차별어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11월호]에 실린 글 외국어 능력이 들쭉날쭉한 사회에서 외국어를 남용하는 일은 언어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짓이다.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하면서 만든 시설이나 물건에 ‘배리어 푸리(barrier free)’라는 안내 딱지를 붙이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배려 없는’ 짓이겠는가? 나또한 1급 시각장애인이지만, 경향적으로 장애인은 외국어 공부에 불리한데 말이다. 어려운 한자어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면 특히 공공언어 분야에서 ‘언어는 인권’이라는 관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언어 차별의 가장 나쁜 모양은 ‘차별어’ 사용이다. 내가 서울시청 국어바르게쓰기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바꾼 차별어로 ‘미망인(→ 고 ○○○씨 유족), 정상인(→ 비장애인), 결손.. 2018. 11. 8.
다시 보는 ‘뿌리 깊은 나무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글 572돌 한글날을 맞아 드라마 를 다시 본다. 방영 당시엔 띄엄띄엄봐서, 우리가 아는 한글 창제 이야기에 ‘밀본’이라는 정도전 추종 세력의 도전을 ‘구라’로 엮어서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정도였다. 어느 사극이든 철저한 고증엔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는 자료는 제법 열심히 찾아보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우리 국민 가운데에는 세종이 한글을 반포할 때 한글 창제의 철학, 글자 모양과 음성의 관계를 상세하게 풀이하고 용례를 담아 펴낸 책 《훈민정음》 해례본을 본 사람이 많지 않다. 대개 “나랏말씀이....”로 시작하는, 세종 이후 세조가 편찬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 정도를 읽어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이 드라.. 2018. 10. 30.
서명과 사인, 그리고 수결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9월호]에 실린 글 어디에 서류 낼 때마다 맨 마지막에 이름 적고 도장을 찍거나 이른바 ‘사인(sign)’을 한다. 은행에서 예금을 들 때도, 예금을 찾을 때도 신청서에 그렇게 한다. 서류 작성자가 본인임을 마지막으로 확인해주는 표식이다. 도장 찍는 걸 한자말로 ‘날인’이라고 하니, 손으로 휘갈겨 이름을 적는다는 뜻의 영어 낱말 ‘사인’과 신기하게도 운율이 맞는다. 날인과 사인. 과거에는 문서 작성자 확인 표시로 대개 도장을 썼으나, 요즘에는 인감도장을 요구하는 경우가 아니면 ‘사인’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은행에서도 통장에 도장 찍는 일보다 사인하는 일이 더 잦다. 도장 들고 다니는 걸 귀찮아해서 그런 면도 있지만, 위조를 막는 데에 사인이 더 든든해서 그럴 것이다... 2018. 9. 11.
족보를 알고 싶은 말들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8월호]에 실린 글 우리가 문자 생활에서 쓰는 한글 조합이 2,350여 자인 데 비해 한자는 480여 개 소리만 표현하기 때문에 외국어나 한국어의 소리를 모두 적지 못한다. 선동 정치가를 뜻하는 ‘데마고그’ 같은 말만 해도 귀로 들었을 때는 ‘대마불사’ 비슷한 ‘대마고구’인가 싶지만, 글자로 적어 놓으면 우리네 한자말이 아니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자주 하다 보면 그 반대편의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자말이 아님에도 한자말이라고 오해하는. 선거철이면 자주 듣는 ‘마타도어’. 근거 없이 남을 모략하는 짓을 뜻하는 이 말은 한자로 그 음을 표현할 수 있는 터라 한자 4자성어일 거라고 흘려 넘기기 쉽다. 하지만 이 말은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2018. 8. 8.
초등 교과서 한자 표기가 한자어 인식에 미치는 영향 초등 교과서 한자 표기가 한자어 인식에 미치는 영향 고성룡, 이건범 이 연구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자어에 주석의 형태로 한자를 표기하는 것이 한자어 인식에 도움이 되는지를 언어심리학 실험으로 알아보려 하였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자어가 포함된 문장과 그 한자어에 대한 주석을 읽게 하고 안구운동을 추적하였다. 한자어에 대한 주석은 문장에 따라 3가지 실험 조건 중 하나로 제시되었는데 각각 1) 한자의 형태와 훈, 음이 모두 제시되는 조건, 2) 한자의 형태 없이 훈, 음만 제시되는 조건, 3) 한자의 형태만 제시되는 조건이었다. 실험 결과 문장 전체의 고정 시간 평균 등 인식의 수월성을 보여주는 지표에서 1) 한자의 형태 및 훈, 음 조건과 2.. 2018. 8. 7.
잘가오 그대 노회찬. 그리 가까이 지낼 기회는 없었지만, 있었으면 하는 자리엔 꼭 나타나셨던 분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늘 든든했다. 정치에서도 그랬지만 말글살이에서도 진보적이었고, 말을 잘하시는 것 못지않게 우리말과 한글 사랑이 각별한 분이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우리 한글문화연대 이동우, 김영삼 운영위원과 함께 찾아가 한자로 된 국회의원 보람(뱃지) 대신 한글로 만든 걸 드렸다. 꽤 좋아하셨고 우리가 만들어 간 300개의 보람을 다른 의원들에게도 나눠주시겠다 하셨다. 2010년 한글날 즈음에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었던 맵시자랑 “한글옷이 날개”에서는 미수다에 출연하던 따루 등과 함께 한글옷을 입고 무대를 누비셨다. 2018년 2월 7일에는 알기쉬운 헌법 만들기 토론회를 .. 2018. 7. 26.
초등 교과서 속 한자어 교육에 한자 지식이 미치는 영향 분석* [출처: 한글지 315호]에 실린 글 초등 교과서 속 한자어 교육에 한자 지식이 미치는 영향 분석* 이건범 〈벼리〉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에 한자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믿음 때문에 한자를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 연구에서는 한자어 교육에 구성 한자 지식을 이용하려는 전략이 타당한지 검토하고자 한자어와 한자 지식의 상관성을 분석한다.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 11,000개를 분석한 결과, ‘부모(父母)’처럼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가 32%, ‘단체(團體)’처럼 훈과 상관성이 낮은 한자어가 16%, ‘비난(非難)’처럼 훈과 상관성이 없는 한자어가 6%, ‘헌법(憲法)’처럼 한자의 음과 훈이 동어반복인 한자어가 46%였다. 훈과 상관성이 높은 한자어는 구성 한자의 뜻을 모아 낱말 의미에 다가갈.. 2018. 7. 18.
로봇에게나 할 말을?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7월호]에 실린 글 오늘은 우리말의 밑바닥에 깔린 뒤틀림을 살펴보련다. 누구나 병원에 가면 바깥 세상에서는 잘 안 쓰는 요상한 말투를 경험한다. “이건범 님, 주사실 앞에서 기다리실게요.” “아, 네.” “이건범 님, 들어오실게요. 바지 약간 내리실게요.” ‘기다리세요, 들어오세요, 내리세요’ 대신 쓰는 ‘기다리실게요, 들어오실게요, 내리실게요’는 이제 병원을 넘어서 미용실, 손톱손질가게 등 손님과 일하는 이가 가까이 접촉하는 모든 업종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때 에서 이 말투를 가지고 노는 바람에 더 심해졌다. 언뜻 들으면 공손하게 부탁하는 말 같기도 하고, 나한테 요구하는 건지 자신이 하겠다고 하는 건지 뒤엉킨 것 같아 앞말에만 의지하여 해석하는 말들. ‘-ㄹ.. 2018.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