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우리말 비빔밥(이건범)56 첫 포스터 ‘싱크홀’ 올 1월부터 중앙정부 18개 부의 모든 보도자료를 조사하여 쓸데없이 외국어를 남용한 공무원들에게 쉬운 말을 써달라고 협박성 건의를 해왔다. 7월부터는 10개 신문사와 9개 방송의 뉴스를 조사하여 역시 쓸데없이 외국어를 남용한 기자에게 쉬운 말을 써달라고 부탁성 건의를 해왔다. 공무원에겐 협박하고, 기자에겐 부탁하고. 물론 다 우리 생각에 마땅할 것 같은 대안어를 제안해주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고, 순순히 받아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월 평균 530명의 공무원과 2천 명의 기자에게 건의를 한다. 이 두 가지 일이 모두 공무원과 기자 개인에게만 다가가는 일인지라 혹시라도 서로 모를까봐 포스터를 만들기로 했다. 연말까지 6개를 만들 건데, 첫편은 안전용어를 주제로 다룬 것. 한겨레신문 권범철 .. 2019. 9. 16. 훈민정음 서문 108자? 어떤 기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일 낮 오후에 ‘나랏말싸미’라는 영화를 졸면서 봤다. 처음엔 팝콘을 먹느라 졸리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꾸벅꾸벅.... 한글 창제 주역을 신미대사라고 그려낸 허구적 상상력의 위세에 비해 영화는 너무 단조로웠다. 그래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을 훼손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다른 무엇보다도 송강호, 박해일과 같은 대형 배우를 끌어다가 이렇게 지루한 영화를 만든 게 너무 안타깝다. 보실 분 보시더라도 두 가지만은 알고 보시라. 첫째,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은 세종대왕임이 이제는 학계의 정설이다. 신미대사는 물론이요, 집현전 학자들도 결코 주역이 아니다. 둘째, 영화 막판에 훈민정음 서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가 109자였는데 여기서 1자 줄여 108.. 2019. 7. 26. 언어는 인권이다 -공공언어 개선의 필요성 [2019.5.17 공공언어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학술 토론회] 언어는 인권이다 - 공공언어 개선의 필요성 이건범 /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 1. ‘스쿨 존’과 ‘그린 푸드 존’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며 퍼뜨린 말 가운데 국가대표 급으로 문제가 많다고 느끼는 말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스쿨 존’과 ‘그린 푸드 존’ 둘을 들겠다. ‘스쿨 존’은 학교 앞이니 아이들 다치지 않게 주의하면서 시속 30킬로미터 밑으로 운전하라는 곳이고, ‘그린 푸드 존’은 어린 학생들에게 위생에 문제 있을 만한 음식은 팔지 말라고 정한 곳이다. 하나는 어린이의 교통 안전, 다른 하나는 어린이의 먹거리 안전을 다루는 말이다. 둘 다 어린이의 생명과 바로 이어지는 말인데, 여기에 영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에서는 자.. 2019. 6. 10. 왜 벤또가 아니라 도시락인가? 2019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 성장의 방안 가운데 하나로 ‘규제 샌드 박스’를 언급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작년 3월에 정부혁신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행정용어 쓰지 말자셨던 분이 왜 이러시나.... ‘샌드 박스’는 말 그대로 모래 상자인데, 불 났을 때 불 끄라고 또는 눈 많이 왔을 때 길에 뿌리라고 모래 담아둔 상자가 아니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래 놀이터에서 따온 말이란다. ‘규제 샌드 박스’는 ‘Regulatory sand box’의 머리만 번역한 말로, , 신산업ㆍ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어 자유로운 시도를 북돋는 제도란다. 나도 모르는 말인지라 여기저기서 얻어듣고야 이 말의 의미를 겨우 알아챘다. .. 2019. 1. 31. 사전의 다른 말, 말모이 1910년대 초에 주시경 선생께서 우리말 사전 편찬을 준비하면서 사전을 ‘말모이’라고 부르셨다. 뒷날 외솔 최현배 선생께선 이를 ‘말광’이라고 불렀다. 우리네 어린 시절까지는 이런저런 물건이나 연장, 곡식 따위를 보관하던 곳을 ‘광’이라고 불렀으니, 말을 보관하고 필요할 때는 꺼내 쓰느라 드나드는 곳이 바로 말광이다. 말모이가 당근이나 건초 따위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내일 개봉하는 영화 를 통해 일반 국민에게도 널리 알려질 터이다. 어제 시사회에 갔는데, 조선어학회의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과 일제의 탄압 등에서 뼈대를 이루는 역사적 사실들이 몹시 뒤틀려 있어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흥행이 될 재미 요소는 갖추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근대에 들어서 국어를 정립하.. 2019. 1. 8. 수납⇥계산, 배선실⇥공동 주방 2018년 말에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에서 우리 한글문화연대가 제안한 ‘병원의 다듬을 말’ 3가지를 확정, 발표하였다. ‘수납’은 ‘계산’으로, ‘하이 패스’는 ‘자동 결제’로, ‘배선실’은 ‘공동 주방‘으로. 서울시에서 이렇게 다듬기로 확정하여 공무원들과 산하 기관에 권장하면, 서울시가 세운 서울의료원, 서울대보라매병원 등 7개의 시립병원에서는 이 말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낱말들은 우리 한글문화연대에서 병원 현장을 조사하여 뽑아낸 것이다. ’수납‘은 돈을 거둬들인다는 뜻인데, 대개 환자에게 “수납하시고 처방전 받으세요.”하는 식으로 잘못 쓰고 있는데다가 공급자 위주의 고압적인 느낌이 드는 용어인지라 ’계산‘으로 바꿔야 한다. ’하이 패스‘는 고속도로 통행료 받는 방법을 본따 일부 병원에서.. 2019. 1. 3. 나이가 깡패인 나라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12월호]에 실린 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럽 출신 유학생들 가운데에는 한국말 참 잘한다 싶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미국에서 유학한 우리나라 사람들 증언에 따르자면, 현지인처럼 영어를 구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던데, 그에 비하면 이 외국인들은 매우 유창하게 한국말을 한다. 한국말이 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술집 등 우리 생활문화가 말 배우기에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같은 어족에 속하는 말끼리는 조금 수월한 면이 있겠지만, 그래도 제 말이 아닌 남의 말을 배우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어는 옛날에는 그렇다고 알던 알타이 어족도 아니고, 어떤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말이라는 게 요즘 언어학계의 정설로 굳어가고 있다. 한국어는 인도-유럽어족과 매우 거리가 먼데, 아주 어.. 2018. 12. 14. '수납'은 '계산', '분리수거'는 '분리배출'이 맞는다 [조선일보 2018년 11월 27일]에 실린 글 병원에서 진료비를 낼 때 "수납 창구로 가시라"는 안내를 받는다. 대개 그곳엔 '수납'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간호사들도 "가서 수납하시고 처방전 받아가세요"라고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수납'이라는 낱말이 여럿 있다. 그중 우리가 많이 쓰는 말은 두 개이다. 하나는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아 거두어들임'이라는 뜻의 '수납(收納)'이고, 다른 하나는 수납장, 수납공간 등에 쓰이는 '받아서 넣어 둠'이라는 뜻의 '수납(受納)'이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수납'이라는 말은 돈을 받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 주체는 누구인가. 환자인가, 병원인가. 당연히 병원이다. 그러니 간호사가 "수납하세요"라고 환자나 보호자에게 안내한다면 그건 '돈 받아가세요'라.. 2018. 11. 27. <사랑스러운 아이들> 한글문화연대에서 하는 일 가운데 보람 없는 일이 있을까마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그런 일이 청소년 동아리 품어 키우는 활동이다. 벌써 5년째 하고 있는 '우리말 사랑 동아리' 키우는 일은 다른 어떤 곳의 지원도 없이 전적으로 우리 회원들의 회비로 예산을 붓고 있어서 더더욱 기쁨이 진하다. 해마다 20개 안팎의 청소년 동아리를 뽑아 최소한의 공부를 함께 하고, 활동 방법을 인터넷 카페에서 알려주고 끌어주면서 약간의 활동재료비를 지원해준다. 한글날에는 여러 동아리가 함께 모여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하고, 우리 한글문화연대에서 만든 유익한 유인물과 홍보책자도 제공해주어 활동을 돕는다. 대개는 학교 단위의 동아리라는 점이 여러 대학의 연합 동아리인 ‘우리말 가꿈이’와 다르다. 각자 학교는 다르지.. 2018. 11. 21.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