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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133

말말결 [아, 그 말이 그렇구나-355] 성기지 운영위원 인터넷 소통 시대가 열린 뒤부터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한 신조어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주로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호기심이 반영된 데다가 또래 집단의 은어까지 섞어 새말을 만들다보니, 그 윗세대와는 잘 소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말의 법칙을 무시하며 새말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겨레 말글의 보존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의 여러 가지 우려를 사기도 한다. 이때 ‘말의 법칙’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 ‘말결’이다. “우리말의 말결에 맞도록 새말을 만들어야 한다.”처럼 쓸 수 있다. 이 말결은 ‘말의 법칙’이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말결에 그 친구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처럼, ‘어떤 말을 할 때를 이르는 말’로 .. 2020. 10. 14.
타끈스러운 사람 [아, 그 말이 그렇구나-354] 성기지 운영위원 말이나 행동이 좀 쩨쩨하고 남부끄러울 때 흔히 ‘치사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치사한 사람이 남에게 아주 인색하고, 거기다가 욕심이 많기까지 하다면, 그러한 사람을 우리말로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타끈스럽다’는 말이 가장 알맞을 듯하다. ‘타끈스럽다’는 “치사하고 인색하며 욕심이 많은 데가 있다.”는 뜻을 지닌 토박이말이다. 자기 돈은 한 푼도 안 쓰고 쩨쩨하게 굴면서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은 참 타끈스러운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타끈스러운 사람이 이끌고 있는 나라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 자처하는 나라이지만, 국가 지도자가 이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감염증을.. 2020. 10. 7.
까치놀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9] 성기지 운영위원 해질 무렵 바닷가에 앉아서 저녁놀을 감상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멀리 수평선 위에서 하얗게 번득거리는 물결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을에 물든 이 물결을 토박이말로 까치놀이라고 한다. 먼 바다의 까치놀을 등지고 떠 있는 고기잡이배는 평화롭다. 하늘도 바다도 그리고 사람도 평화롭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평화롭지 않다. 도시의 일상에서 누려 왔던 평화는 석양을 받은 까치놀인 듯 멀리서 번득일 뿐 아무리 애써도 손에 닿지 않는다. 눈만 빼꼼히 내놓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생활한 지 8개월여. 승강기 안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도 말 한 마디 건네기가 어려운, 감염병에 유폐된 2020년. 텅 빈 가게를 지켜야 하는 자영업자에게도, 숨 한번 크게 내쉬지 .. 2020. 8. 26.
황그리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8] 성기지 운영위원 진정되어 가는 줄만 알았던 코로나19 감염증이 무서운 기세로 다시 퍼져 나가고 있다. 우려했던 대로 교회 예배와 거리 집회, 갖가지 모임 등을 통한 집단 감염이 주 요인이라고 한다. 코로나19 2차 확산에 대한 공포가 온 나라로 번져 나감에 따라 그 빌미가 되었던 몇몇 사람들은 크게 지탄 받고 있다. 우리말에 “욕될 만큼 매우 낭패를 당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낱말이 바로 ‘황그리다’라는 말이다. “코로나19 방역 체계를 황그렸으니 국민들이 분노할 만하다.”라고 사용할 수 있다. 무대에서 공연하던 배우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울면서 황그리는 걸음으로 무대 뒤로 뛰어 들어갔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행동이 단정하지 못하고 수선스럽고 거친 사람을 ‘왈짜’라고.. 2020. 8. 20.
어간재비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7] 성기지 운영위원 실현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 가운데 층수 제한 완화가 끼여 있다. 35층까지로 규제해 오던 서울시 아파트 층수를 50층까지로 허용한다는 것이다. 한강을 따라 늘어설 50층짜리 주택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 큰 덩치에 또다시 가로막힐 팍팍한 서민들의 삶이 그려졌다. 서울을 높은 곳과 낮은 곳으로 나누게 될 고층 아파트들! 그 어간재비는 또 얼마만 한 그늘을 만들어낼 것인가! 어떤 공간을 나누기 위해 칸막이로 놓아둔 물건을 ‘어간재비’라고 한다. 집안 거실을 높은 책장으로 구분해 놓으면 그 책장이 어간재비이고, 사무실 책상들 사이를 칸막이로 막아 놓으면 그 칸막이가 어간재비이다. 때로는 특정 이념이나 종교가 사회 구성원을 나.. 2020. 8. 12.
외상말코지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6] 성기지 운영위원 어릴 때 어머니 심부름 가운데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외상으로 물건 사오기였다. 그렇잖아도 숫기가 없었던 터라 돈도 없이 물건을 사온다는 건 엄청난 부끄러움을 감내하고 대단한 용기를 내야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신용카드 한 장으로 얼마가 됐든(그래도 5만 원 넘는 외상엔 간이 졸아들지만) 어디서든 외상을 떳떳이 한다. 달라진 시대는 두께가 1밀리미터 남짓한 플라스틱 안에 모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순 우리말에 ‘외상없다’라는 말이 있다. “조금도 틀림이 없거나 어김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토박이말이다. 가령, “그 사람은 참 성실해서 무슨 일이든지 외상없이 해놓곤 한다.”라고 쓸 수 있다. 신용카드는 비록 30일 안에 물건값을.. 2020. 8. 6.
투미하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5] 성기지 운영위원 돌연히 세상을 등져 버린 서울시장의 자취 뒤에 미투(Me Too) 논란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비록 들온말이지만 처음부터 ‘미투하다’는 말이 낯설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이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언뜻 ‘투미하다’는 우리말이 떠올랐다. 어리석은데다가 둔하기까지 한 사람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다. 경상도 지방에서 ‘티미하다’고 하는 말의 표준말이 ‘투미하다’이다. 억눌리고 감추어 왔던 성 관련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알려 여론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게 미투 운동인데, 아직은 투미한 사람들이 그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은 투미해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처럼, 상대방이 자기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둔하게 반응할 때에 ‘투미하다’는 말을 쓸 수.. 2020. 7. 29.
모도리와 텡쇠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4] 성기지 운영위원 사람의 생김새나 어떤 일 처리가 빈틈이 없이 단단하고 굳셀 때, ‘야무지다’, ‘야무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빈틈없이 매우 야무진 사람을 나타내는 우리 토박이말이 ‘모도리’이다. 흔히 겉과 속이 단단하고 야무진 사람을 ‘차돌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차돌은 모도리와 같은 뜻으로 쓰인 말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차돌은 생김새가 단단한 사람을, 모도리는 일처리를 야무지게 하는 사람을 주로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차돌이나 모도리와는 반대로, 겉으로는 무척 튼튼해 보이는데 속은 허약한 사람을 낮잡아서 우리 선조들은 ‘텡쇠’라 불렀다. 텡쇠는 아마도 ‘텅 빈 쇠’가 줄어들어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하고 여러 학자들이 추측하고 있다... 2020. 7. 22.
무거리 [아, 그 말이 그렇구나-343] 성기지 운영위원 주변을 돌아보면, 코로나19 사태로 사람들의 위생 관념이 많이 나아진 것을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사용은 이제 필수적인 일상이 되었고, 가벼운 재채기나 기침을 하는 모습도 웬만해선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며칠 전에 어느 책에서 “손을 자주 씻는 습관이 생긴 것은 코로나19의 무거리 중 하나이다.”는 글을 읽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토박이말 ‘무거리’가 참 반가웠다. 우리 토박이말 무거리는 본디 ‘곡식을 빻아서 체로 가루를 걸러 내고 남은 찌꺼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무거리 고춧가루라든가, 무거리 떡이란 말을 쓰는 어른들을 더러 만날 수 있다. 이 말의 쓰임이 좀 더 넓혀져서, 예부터 무거리라고 하면 ‘변변치 못해 한.. 2020.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