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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361

겹쳐 쓰는 말들 [아, 그 말이 그렇구나-290] 성기지 운영위원 요즘 ‘주취 폭력’을 줄여서 ‘주폭’이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주폭까진 아니라도 주정을 부리는 자체가 주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술에 취해서 정신없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주정’이다. 이미 ‘술 주’ 자가 들어가 있으므로 ‘술주정’이라 말할 필요가 없다. 맛있고 영양 많은 음식을 소개하면서 ‘몸보신’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몸을 보충하는 것은 ‘보신’이라고만 하면 된다. 국어사전에는 ‘술주정’과 ‘몸보신’ 들을 올림말로 싣긴 했지만, 낱말 뜻은 각각 ‘주정’과 ‘보신’ 쪽에 풀이해 놓고 있다. 비슷한 사례 가운데, 돌로 만든 비는 ‘비석’이라 하면 된다. 이것을 굳이 ‘돌비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나무를 깎아 세운 비는 ‘비목’인데, .. 2019. 6. 12.
골탕 먹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9] 성기지 운영위원 ‘골탕 먹다’란 말이 있다. 이 숙어는 “크게 곤란을 당하거나 손해를 입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누구나 쉽게 쓰는 말이지만, 어디에서 온 말인지 깊게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원사전을 뒤적이니 ‘골탕’이란 음식 이름에서 왔다고 한다. 원래 소의 머릿골과 등골을 맑은 장국에 넣어 끓여 익힌 맛있는 국물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그래서 골탕을 먹는 것은 맛있는 고기 국물을 먹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골탕 먹이다’가 곯려 주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을까? ‘남을 곯려주다’라고 할 때의 ‘곯다’라는 말이 ‘골탕’과 소리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에 음식 이름과는 전혀 다른 ‘골탕’이란 말이 새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또 ‘먹다’.. 2019. 6. 5.
가랑비와 안개비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8] 성기지 운영위원 무더위가 일찌감치 찾아오면서 본격적인 모내기철이 시작되었다. 이맘때쯤 농부들은 들판을 흠뻑 적셔주는 빗줄기를 고대하게 되는데, 아쉽게도 강수량은 턱없이 적다.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져서 타들어가는 농부의 입가에 웃음을 떠올리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를 ‘작달비’라고 한다. 작달비를 만나면 우산도 별 소용이 없게 되지만, 옷이야 흠뻑 젖건 말건 작달비가 그리운 요즘이다. ‘작달비’와 반대되는 비가 ‘안개비’, ‘는개’, ‘이슬비’, ‘가랑비’ 들이다. 가늘고 잘게 내리는 비인 ‘잔비’도 있고,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만큼만 오는 ‘먼지잼’이란 비도 있다. 이 가운데 ‘잔비’는 국어사전에 가랑비의 다른 말로 올려놓았다. 그런데 가랑비.. 2019. 5. 29.
눈망울, 꽃망울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7] 성기지 운영위원 흔히 ‘맑은 눈망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눈의 어떤 부분일까? 보통 눈알 앞쪽의 도톰한 부분을 가리키거나 또는 눈동자가 있는 곳을 눈망울이라 한다. 그러니 눈동자와는 조금 다르다. 비슷한 말 가운데 ‘꽃망울’이 있는데, 아직 피지 않은 어린 꽃봉오리를 꽃망울이라고 한다. 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북한산 아카시아 꽃이 이미 활짝 피었다. 열흘 전에만 해도 꽃망울이 송송했던 가지가 눈부시게 하얀 꽃들을 가득가득 매달고 있다. 눈망울이 있는가 하면 ‘콧방울’도 있다. 코끝 양쪽으로 둥글게 방울처럼 내민 부분을 콧방울이라 한다. ‘눈망울’, ‘콧방울’ 하니까 ‘귓볼’이란 말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가운데 “귓볼이 두둑해야 수명.. 2019. 5. 22.
우유갑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6] 성기지 운영위원 어린이가 있는 집은 대개 현관문에 우유 주머니가 매달려 있다. 여기에 우유 배달원이 새벽마다 우유를 넣고 가는데, 이 우유를 담은 종이 상자를 ‘우유곽’이라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표준말은 ‘우유곽’이 아니라 ‘우유갑’이다. ‘우유갑’으로 적고 [우유깝]으로 발음한다. 사전에 보면 ‘갑’은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를 말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갑’과 많이 혼동하고 있는 ‘곽’은 ‘성냥’을 가리키는 제주 사투리로 남아 있는 말이다. 발음을 올바르게 하지 않아서 본래의 낱말이 잘못 쓰이고 있거나 뜻이 전혀 달라지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자를 나타내는 말에 ‘곽’이 붙어 쓰이는 우리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벌통에서 떠낸 꿀을 모아 담는, .. 2019. 5. 15.
멍텅구리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5] 성기지 운영위원 요즘에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리는 투로 말할 때 ‘멍청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멍청이를 달리 ‘멍텅구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멍텅구리는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그릇의 한 가지인데, 그 모양이 목 부분이 좀 두툼하게 올라와서 못생겨 보이는 되들잇병이다. 되들잇병이란 물이나 곡식 한 되 분량을 담을 수 있는 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병 목은 몸통보다 가늘고 날렵한 법인데, 이 병은 목 부분이 두툼하게 되어 있어 둔해 보인다. 그래서 사람도 이처럼 둔해 보이면 멍텅구리라고 불렀던 것이다. 멍텅구리의 둔해 보이는 생김새 때문에 멍청이를 멍텅구리라고 불렀던 면도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을 멍텅구리라고 부르게 된 까닭은 또 있다. ‘멍텅구리’는 뚝지라는 바닷.. 2019. 5. 8.
죄받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4] 성기지 운영위원 우리에게 익숙한 낱말 가운데 본디 뜻과 정반대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죄받다’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동물을 학대하면 죄받아.”처럼, 흔히 ‘죄받아’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죄와 벌 이 두 낱말은 서로 반대말로서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물을 학대하면 벌 받아.”와 같이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벌을 받다’는 뜻으로 ‘죄받다’가 쓰이고 있는 것이다. ‘죄를 짓다’, ‘벌을 받다’는 분명히 구별해서 써야 할 말들이지만, “죄에 대하여 벌을 받다.”는 뜻으로 ‘죄받다’가 쓰인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렇게 본디 뜻이 반대로 옮겨간 낱말 가운데에는 ‘에누리’라는 말도 있다. ‘에.. 2019. 5. 2.
퇴임식 인사말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3] 성기지 운영위원 백세 시대에 60세 정년은 아무래도 이른 감이 있다. 정년 후의 남은 삶이 구만리인 까닭이다. 그래서인가, 은사님이 정년퇴임을 하실 때라든가, 잘 아는 어른이 공직이나 회사에서 정년퇴임을 하실 때, 퇴임식에서 어떤 인사말을 해야 할지 아리송해진다. 정년퇴임을 하시는 분이 이제 직장을 잃고 자리를 떠나는 것을 위로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해진 기간을 다 마친 것을 축하해야 하는지, 선뜻 판단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니, 중간에 낙오 없이 법적으로 정해진 기간을 근무하고 정년에 이르는 것은 자기 일을 성실하게 끝까지 마친 사람만이 맞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축하의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래서 정년퇴임을 하시는 어른께 하는 적.. 2019. 4. 24.
껍질과 껍데기 [아, 그 말이 그렇구나-282] 성기지 운영위원 ‘껍질’과 ‘껍데기’는 비슷하긴 해도 아주 같은 말은 아니다. 국어사전에서 보면, ‘껍데기’는 “달걀, 조개 또는 딱딱한 과실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로 풀이되어 있다. 그리고 ‘껍질’은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전체를 싸고 있는 질긴 물질”이다. 이 풀이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것은 ‘딱딱함’이란 성질이다. 대체로 볼 때에, 겉을 싼 것이 딱딱하면 ‘껍데기’이고 질기면 ‘껍질’이다. “조개껍데기, 굴껍데기, 달걀껍데기”라 하고, “귤껍질, 사과껍질, 소나무껍질”처럼 구분해서 말한다. 우리가 자주 부르던 노래 가운데,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란 노랫말이 있다. 이 노랫말에 나오는 ‘조개껍질’은 사실은 ‘조개껍데기’라야 맞다. 그런데 에서 ‘.. 2019. 4. 17.